전쟁은 누구의 책임인가 - <7년 전쟁>, 김성한 책 이야기

 짧게 쓰는 게 능력이라는 걸 다시 느낀다. 핵심을 짚어내지 못해 무작정 길어지는 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참 더 많지만 분량의 압박에 이 정도로 줄였다....그냥 좌절.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다. 우리는 1592년 임진년 일본이 조선을 침공한 전쟁을 그러고는 나라를 지킬 병력이 없어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한 전쟁을 우리는 임진왜란이라 부른다. 내가 알고 있는 이 '난'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미쳐서, 임진년에 왜군이 난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명나라에선 그들의 군대를 파견해서 조선군과 같이 왜군을 퇴치했다는 것이다. 우리 조정은 어리석어서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을 무시하고, 류성룡은 멍청하기 그지 없어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알지 못 했고, 신립은 용맹하지 못해 모든 병력을 잃었다. 원균은 멍청해서 이순신이 힘들게 조련한 수군과 배를 모두 바라에 가라 앉혀 버린 것이고, 그런 다 망가진 수군을 가지고 일본 수군을 쳐 부순 충무 이순신은 신인 것이다. 관군은 허수아비였고, 곳곳에 뜻 있는 의병들로 인해 7년 간의 전쟁 끝에 왜구를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 


 바로 여기가 내 사고가 멈춰진 지점이었지만, 표지에 있는 동북아 삼국의 관점이란 이야기를 보면서 사고가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입장에선 도대체 왜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인지, 또 명나라에선 뭐가 좋다고 우리나라에서 병사를 파견해서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이었을까? 거기에 도대체 우리나라의 조정과 관군은 뭘 하고 있었길래 그냥 짓밟고 지나가듯 한 속도로 서울을 내줄 수 밖에 없는 것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증과 일본과 명나라에선 어떤 관점으로 이 전쟁을 보고 있을까 등. 이 작품은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도 남는 소설이다.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일본의 사료까지 검토하여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인 것이다. 


 8월의 무더운 여름 휴가기간을 기회로 <7년 전쟁>과의 만남을 시작했고, 읽는 내내 때로는 답답하고 화가 나고, 통쾌함에 신이 나서 책을 넘기기도 하고, 안타까움과 전쟁의 처절함에 치를 떨기도 하는 복잡한 심정이 왔다갔다 하며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거대한 산을 넘어 온 기분, 그러고 나서 다시 더 높은 산을 만난 기분이다. 작품을 읽으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던 내 심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무언가 거대한 벽이 날 가로 막은 느낌인 것이다. 장문의 글을 썼다 지우는 걸 반복하다 보니, 멋있는 말을 자꾸 만들어 내려 나도 모르게(?) 글에 힘이 들어갔던 게 아닐까 싶다. 다시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시점, 조선을 쳐들어 간다는 소문이 만연하여 쓰시마(대마도)에서는 전쟁을 막아 보기 위한 사전 작업이 처절한 시점에서 책은 시작한다. 조선에 사신도 보내고, 조선과 히데요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수많은 계책에 갖은 노력을 다 한다. 그렇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쟁의 암운이라니. 당연히 역사에 의해 전쟁이 진행될 걸 알면서도 어쩐지 일이 잘 되어 안 하고 넘어갈 것 같은 기분과 여지 없이 무너지는 기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직접 와서 쳐 들어 오겠다고 하는데도, 믿지 않는 관료들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나라에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에서 한 관료가 와서 우리나라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깡그리 무시했던 게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결국 전쟁을 막는 것에 모두 실패하고 안타깝게도 결국엔 1592년 임진년에 전쟁이 시작 됐다. '전쟁'이란 말에서 우리는 장수나 모사와 같은 영웅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펼치는 '전술'과 '무예'의 아름다움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이 작품이 묘사하는 참혹한 '전쟁'을 보고 있으면 유비, 관우, 장비가 활약하는 삼국지(삼국연의)에서의 전투는 무협/판타지에 가깝다. 이 작품 속의 전쟁에선 신묘한 계책으로 적의 길목을 들이쳐 5천의 병사가 10만의 군사를 당해내는 일이나, 적장과 100여 합을 싸우고도 부족하여 힘이 넘치는 장수나 날아오는 화살을 장난처럼 가볍게 창으로 쳐내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참혹함과 사실의 묘사 그게 전부다. 얇은 옷을 입고 타국에서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병사가 6개월이 지나면 쌀쌀한 날씨에 고생하는 게 당연하고, 기후에 변화가 생겨 비가 내리면 비를 피해 쉴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병사들도 당연히 밥을 먹어야 하고, 밥은 단지 쌀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밥을 지어야 한다. 밥을 짓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당연히 솥도 필요하다. 시간이 없으면 당연히 생쌀을 씹어 먹을 수 밖에 없고, 무거운 솥과 조리기구는 누군가는 날라야 하는 것이다. 


 삼국지에선 아무리 강력한 적이 들어와도 유능한 장수와 성내 병사가 하나 돼서 굳게 지키면 쉽게 무너지지 않던 성들도 이 작품에선 그렇지 않다. 상대방에게 포위를 당하면 보급이 끊기기 때문에 자살행위이고 겹겹이 둘러 싸고 1, 2, 3진이 돌아가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오는 적을 교대 같은 건 생각하지 못하고 무찔러야 하는 병사들은 당연히 피로할 수밖에 없고, 이런 병사들이라면 도망가는 길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리 병사들의 사기가 높고 뛰어난 지휘관이 붙어 있더라도 상대방의 수적 우세에는 도무지 당할 수가 없다. 거기에 무기도 계속 써서 닳고, 식량까지 줄어든다면 답이 없다. 정말로 목숨을 내 놓고 싸우다가 쓸쓸히 쓰러질 뿐. 


 의병이란 존재도 뜻이 좋아 의병이지 사실은 동네 청년, 아저씨, 노인들이 무기로는 써 보지도 않은 도구들을 가지고 모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이 쓰는 무기에 통일성이 있을리 만무하고, 체력도 천차만별이다. 거기에 적을 맞아 싸우다 보면 당연히 무기가 고장나고 떨어질텐데, 뒤에서 누군가 보급을 해 준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러니 이게 도무지 전투가 되는가 싶다. 또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황폐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전리품으로 모든 걸 쓸어 가고, 툭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죽이고 그들이 가진 작은 것조차 빼앗아 버리는 것이 전쟁이다. 거기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모조리 불을 태워 버리고, 있는 식량들은 쓸어가 버리지 간신히 살아 남은 백성들의 살길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이라니..


 거점도 가지지 못한 상대방이 다른 나라에 와서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도 빨리 제압을 당할 수 있는 것인지 보면서 참 한심스럽기도 하고, 도무지 결단은 내리지 못하고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는 왕을 보면서는 어째 이런 사람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부끄럽고, 한숨만 나오는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답답한 상황에서 나의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순신과 조선수군 그리고 각지에서 추앙받는 선비들이 의병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허술한 임금과 당파싸움에 눈이 먼 벼슬아치들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조국과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자꾸만 뭉클함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순신 장군의 순도 100% 옥포해전에선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쾌함에, 함대와 수군을 거의 전부 잃고 적의 대함대와 마주하여 대승을 거두는 명량해전에서 가슴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리.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충성을 다하고 갑작스런 내부의 배신에 뒤통수를 맞거나, 용감히 싸우다 적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 중과부적의 적에게 돌진하여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이고 죽겠다는 일념의 멋진 영웅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홍의장군 곽재우를 필두로, 김천일, 정인홍, 김시민, 조헌, 고경명 등. 부디 멋지게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에 읽다가도 갑자기 허무하게 쓰러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괜히 작가를 원망하게 되는 건 참….


 명나라의 등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화평을 위해 엄청나게 뛰어 다니는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다. 화평을 논의하기 위해 전권을 위임받고 사자로 파송되는 심유경은 모두가 가서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시점에 출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며 나선 인물이었다. 엄청난 거짓말을 일삼고 이쪽 저쪽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그는 여기저기서 비판도 많이 받게 되는데, 결국 다시 결론이 '믿을 사람은 심유경'이라는 걸 나오는 걸 보면 어쩌면 대안 없는 우리사회의 모습과도 상당히 닮아 있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알았던 삼국지의 유명 모사들은 정도의 경중만 있을 뿐 대략 이 정도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융중의 시골에서 글 읽던 제갈량 같은 사람이 어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리라는 예측을 귀신처럼 할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출세를 노리는 이런 심유경의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지켜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임진왜란이란 제목보다 '7년 전쟁'이라는 제목을 쓰며 당시 삼국의 실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려 했던 김성한 작가는 인물의 묘사에서도 그들의 업적이나 실수와 같은 단편적 모습을 통해, 위인으로서 혹은 역사의 죄인으로 결론 내지 않고, 이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역사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류성룡, 김성일의 절대 전쟁은 없다라는 선언도 전쟁을 막으려 뛰어 다니는 대마도 사람들과 일본 조정의 대신들을 보며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고, 전쟁을 위한 노역에 끌려 다니는 국민들을 측은히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거의 목숨을 내 놓고 실책을 만회하려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원균이 몰살시킨 칠천량 해전의 경우는 무리한 조정의 요구에 될대로 되라는 식의 반응이 문제였던 것는데, 이전 이순신 장군과 해전에서 같이 공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 무관으로서는 나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유와 배경이 있었다고 그들의 엄청난 오판과 실책이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류성룡-김성일 병신, 원균 XXX'는 없앨 수 있지 않을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고, 얼마나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어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했는지… 작가는 다른 과거의 실수를 했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역사적 당위성을 부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삼국의 왕들에 대해서는 가장 날카로운 평가의 칼날을 들이민다. 책의 머리에 있는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란 글귀를 보며 무능한 선조를 향한 말로만 생각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삼국의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피를 보게 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백성을 내팽겨치고 도망가기 바빴던 조선의 선조, 여색에만 관심이 있고 국정과 전쟁에 관심 없어 결국 명나라를 멸망에 이르게한 세 명의 지도자 모두를 향한 말이라는 느낌이었다. (어이가 없는 건 세 왕 모두 다른 말은 안 들어도 애첩의 말에는 쩔쩔맨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받겠다는 마음에 전쟁을 일으키는 히데요시와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못해 재침을 받게 만든 선조를 보면서는 국가를 책임지는 그들도 결국은 그 알량한 명분과 체면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그들에게 국사란 건 백성의 삶이란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싶다.


  역사에는 수많은 복선과 신호, 단서들이 존재하고 임진왜란이 일어 날 당시에도 전쟁을 가리키는 전쟁을 향한 신호, 복선, 단서들이 쌓이고 있었다. 애써 무시하고 상대방를 깔 보며 안심하고 있던 것이 참혹한 결과라는 필연적인 결론으로 귀결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의 이런 모습이 어찌 보면 추리문학과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대부분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역사의 결론을 위한 단서들은 쌓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참혹했던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그래서 이런 책을 읽으며 그들을 보며 함께 울고 웃었던 것이겠지.


 삼국지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을 무시하고 싶은 맘 추호도 없고, 남의 역사에 관한 책만 읽고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한 책은 읽지 않았던 사람들에 유감은 없지만, 만약 그러한 누군가가 왜 우리나라에는 삼국지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재미있는 책이 없느냐는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이 책 '7년 전쟁'을 읽고 나서 하라고 전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접하고 이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기를 바라고, 작품을 소개해 준 분께 큰 감사를 드리며, 다시 출판해 준 출판사에 건승이 있기를. 


p.s. 역시 해외에 나갈 때는 그 나라 언어의 기본 회화 정도는 익혀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얻게 되는..


벡스코에서 발표.

 내일 2011년 10월 28일은 나름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 무려 부산 벡스코 회의장에서 발표하는 것.

 나름 쟁쟁한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듣보잡 '엔지니어'라는 게 괜히 뿌듯해진다....;;


번역을 마치고. 생각들

3년반 동안의 투잡 생활이 이제 끝났다.

 

투잡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과연 언제나 했으려나? 친구 녀석이 갑작스레 꺼낸 아르바이트 이야기였고, 한글을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르바이트지만 급여는 월급으로 꾸준히 나올 거라는 이야기, 그리고 추가 작업이 있을 시에는 추가로 돈이 나갈 거라는 이야기도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영어의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고, 거기에 돈까지 벌 수 있다는 게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게 2008년 3월, 그리고 이제 계약이 종료되어 모든 업무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게 2011년 7월이었으니, 만으로 3년 4~5개월 정도를 한 것이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새벽부터 저녁까지는 회사 생활을, 저녁 늦게 퇴근해서 새벽까지는 번역 작업을 했었으니, 돌이켜보면 참 피곤하고 고달픈 하루의 연속이었다. 주말이 다 되어 긴급으로 처리해 달라는 게 생기면, 주말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평소보다 일찍 돌아와서는 컴퓨터를 붙잡고 자판을 열심히 두들기던 생각도 난다.

 

과연 내 영어실력이 한->영 번역을 해서 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냐고 누가 묻는다면, 참 부끄러울 것 같다. 만약에 시작할 당시에 물었다면 더 곤란하지 않았을까 싶다. 되지도 않는 표현을 지어내서 문장을 만들어 낼 때,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문장을 가지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때는 정말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이 일로 인해 내 스스로가 일구어 낸 많은 성장을 보면 참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번 돈을 대강 세어 보니, 외제차는 힘들지 몰라도 제네시스 괜찮은 옵션은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데 어째 현실에선 노트북 한 대만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번역이라는 일을 경험해 보니, '마감'을 앞두고 있는 작가나 번역가의 심정을 몸소 느낄 수가 있었다.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은 일을, 거의 밤을 새 가며 억지로 맞췄을 때나, 야근 혹은 회식으로 도무지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로도 정신력으로 버텨 가며 엄청난 오타를 내면서 마무리지었던 때도 있었다. 안타까운 건 후반부에 가서는 마감을 툭하면 어겼다는 것이다. 정말 초반 2년 반 동안은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3~4일을 남겨 놓고 무려 50 장을 번역해야 하는 일도 있었고, 아침에 받아서 점심 때까지 어떻게 좀 달라고 해서, 근무하면서 틈틈이, 그리고 점심시간에 마무리 해서 넘겼던 적도 있다. 컴퓨터가 없어 PC 방에서 번역을 해야 해서, Word가 깔린 컴퓨터를 찾아 헤매기도 했었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꽤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만두지 않았던,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는 친구에게 내가 이 일을 하겠다고 했던 것도 있고, 내 스스로 일을 하지 않는 내 퇴근 후의 시간을 일을 하는 시간보다 더 값지게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일이 없는 주를 맞는 날에는, 단순히 웹서핑을 하다가 늦게 잠드는 날 보았었기 때문이고, 내가 강제로 영어라는 언어에 쏟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사업 영역이 조금씩 축소되는 걸 보면서, 이제 곧 나도 그만두게 될 날이 멀지 않았구나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고, 번역을 하지 않아 남는 시간엔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많이 했었고, 번역이라는 걸 핑계로 조금은 소홀이 했던 내 몸관리를 좀 하려고 한다. 약 두 달 전부터 수영하고 헬스를 다시 시작했는데, 항상 실패했던 '몸 만들기'를 어째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번역을 그만두니 어떠냐는 기분을 묻는다면 정말 '시원섭섭'이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더이상 마감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엄청난 분량에 놀라거나, 영어로 바꾸기 어려운 국어식 표현이 나왔을 때의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또 퇴근 후에 해야 할 '의무'가 사라졌다는 것에는 시원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 월급 외 수익이 없을 때의 섭섭함과 허전함 역시 어쩔 수 없다. 문제는 무려 3년반이라는 기간 동안에 길들여졌던 소비습관인데, 이제는 다시 월급만을 받고 생활하던 때로 돌아가야 하고, 조금은 더 절약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번역을 마치고, 비록 나의 이중생활은 일단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그간 내가 남겼던 자료는 인터넷과 나의 노트북에 그대로 남았고, 그간의 경험은 나를 조금은 더 큰 사람으로, 그리고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p.s. 그런데 어째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사장님 얼굴은 한 번도 못 봤다는 것. 메일만 한 번 주고 받았다는..


나는 가수다(5/22) 후기. 공연 이야기

 오랜만에 다시 쓴다. 지난 번 방송을 보고, 경연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시간 떼우기 식의 방송이었다는 혹평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시청자들에게 경연곡들을 익혀서 다음 방송을 더욱 재미있게 시청하라는 의미가 있지 않았었나 싶다. (나 같은 사람은 'Run Devil Run'을 모르니 다시 한번 듣고 오라는 기회를 준 것이라고나 할까. -_-;) 마지막에 BMK가 나온 건 가장(?) 유명한 곡이기도 하고, BMK가 어떻게 부를지 대강 나오고, 가장 신나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각설하고, 드디어 말도 많았던 경연날이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누가 탈락할 것이라느냐는 둥의 루머가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제작진의 멋진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다시 한번 깨달은 건 역시나 농담은 진담과 적절히 섞어서 해야 더 진실 같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윤도현의 목상태가 어쩌느니에 집중하고, 편집에서도 어딘지 그가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으니까.

 인터넷을 둘러 보다 보면 자주 보는 글이 있는데, 노래는 고음을 지른다고 잘하는 게 아니라는 말. 그 말을 누가 모르겠냐만은, 노래를 들을 때 결국에 가장 집중하게 되는 건 바로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이런 식의 경연에서 후렴구에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난 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거야' 라는 건 내공이 높은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모르지만, 일반인을 상대해서는 도저히 먹힐 수 없는 전략인 것이다. (When you believe를 부르는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보다, 각각 Without you, I'll always love you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 것도 그것 때문이겠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강하게, 더욱 더 높게를 해야 하는 것인데, 조만간 그 부분에서 사람들이 질려 버릴 것 같긴 하다. 내가 걱정하던 걸 이소라, 박정현도 같이 걱정했는지, 둘 모두 힘을 좀 뺀 무대를 준비했다. 지난 경연에서 각각 2,1 위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참 안스러웠다. 이소라가 좀더 노래를 뒤에 불렀었다는 어땠을지는 모르겠다만, 역시나 내가 생각하는 건 무난한 공연은 쉽사리 잊혀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도 예외가 있었다. 초절정 고수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런 모습에도 모두가 감동을 받고, 다른 기억들을 포맷시켜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임재범의 모습에서는 바로 그 초절정 고수의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 때로는 건방져 보이는 발언과 모두가 최고의 가수로 칭송하는 말이 절대 허언이 아님을 몸소 보여줬다고나 할까. 난 그가 마이크를 잡고 '내가 만약...'을 부르는 순간부터 감탄을 연발하며, 노래는 이렇게 불러야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난 자꾸만 임재범을 보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무공을 가졌던 천룡팔부의 그 무명승이 떠올랐다. 나도 자꾸만 괜히 눈물이 나더라. 근데 임재범 아저씨의 문제는 남자들이 자기 노래 열심히 선곡하게 해 놓고, 도저히 따라 부를 수 없게 만들어 놔서 여자들에게 욕을 먹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 노래도 들으면서 '와' 했지만, 도저히 노래방에서 선곡해서 부를 엄두는 나지 않는다.

 BMK는 참 선곡 잘 했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누가 불러도 이 노래는 잘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애국심을 자극하는 가사에, 익숙한 멜로디, 거기에 자신의 가창력을 최대로 끌어 올려 보여줄 수 있는 '밤밤바~~'까지 있으니. 이 곡이 걸렸을 때의 BMK의 얼굴에 회심의 표정이란. 개인적으로도 열심히 따라 부르며 듣기는 했지만, 너무나 예상했던 무대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임재범의 말대로 더 손을 델 수가 없기도 했겠다만.

 윤도현(YB)의 경우는 어찌 보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말 좋아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의 공연을 보면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나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와 같은 킬링 트랙이 없어 조금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레파토리가 약한 게 아쉬웠는데, 이번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서 Dash와 Run Devil Run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생겼으니. 앞으로 그의 공연에서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처음 편곡할 때 조금 어색할지 몰라도, 이런 노래도 Rock 으로 만들면 꽤나 들을만 한 거 같다. 물론 윤도현의 시원한 목소리가 한 몫을 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 (김경호의 Now를 생각하면 참....) 그리고 이들은 항상 분위기를 띄워주기 때문에 나름 중위권을 유지하는 안정감이 있는 것도 같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제는 좀 질려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렇게 되면 장르나 뮤지션의 스타일 변신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가수가 아닐까 싶다.

 김연우는 말 그대로 노래를 너무 잘한다. 그렇지만, 변신과 새로운 모습이라는 측면에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이번 '나와 같다면'에서는 자신은 변한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의 음색과 가창력에 자신이 있었기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육성을 시도했고, 엄청난 박수와 갈채를 받아냈던 것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노래방에서 노래 좀 한다는 친구들 많이 시도하지 않을까 싶다. 노래 좀 하는 친구들, 김장훈 노래를 하는 건 잘 못 봤었는데 말이지. 그런데 앞으로 보지 못한다니...믿어지지 않는다.

 김범수는 지난번에선 엄청나게 엄살을 떨더니 역시나,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가수가 아니었지만, 김범수를 보고 있으면 놀라운 건 모든 노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아니, 다른 사람의 노래하는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고나 할까. 회가 지날수록 더 강해지는 듯한 모습은 흡사 싸울수록 더 강해지는 샤이어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늪을 조관우의 가성 창법식으로도 소화해 내고, 후반부의 샤우팅으로도 멋지게 소화해 내고. 제발을 부르는 모습에 정말 가수로서 물이 올랐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무대를 보니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이번 노래하는 모습을 보니, 임재범의 노래할 때, 고개를 젖히는 동작도 슬슬 따라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게 보였다. 임재범도 김범수를 보며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던 거 같다. 나오지는 않았었지만 이제는 너의 세상이라는 게 아니었을까... 김범수, 당신 도대체 뭐야.....


 소문에 따르면 다음주부터 임재범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큰 즐거움이 하나 사라졌다니..'여러분'을 들으면서 흘렸던 눈물이 마지막이 될까봐 벌써부터 화가 나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라니. 개인적인 생각은 김건모-임재범으로 이어지는 '선배'가 버티고 있어서, 임재범 이후에도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가수가 대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후임으로 선발된 사람을 보이 조금은 의외고,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럽기도 하다. 이번 주 방송을 보고, 앞으로도 계속 이 방송을 볼지 안 볼지를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찌 보면 윤도현과 임재범이 내가 이 방송을 보는 이유였으니.

 이런 멋진 프로그램을 기획한 방송국(어디지?..-_-;)과 PD, 그리고 무엇보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 않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 여러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음악'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최고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p.s.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괜시리 예전 가수들이 모여 불렀던 '하나 되어'를 찾아 봤는데, 거기에 참여했던 가수 중에 유일하게 김건모 만이 '나는 가수다'에 나왔었는데, 만약 옥주현이 나온다면 두 번째 멤버가 되겠네. 그때의 쟁쟁한 가수들(물론 아닌 사람도 많다만..), 다들 뭐하시나? ^^


때늦은 <나는 가수다(5/1)> 후기. 공연 이야기

얼마만인가, 이렇게 본방을 사수하고 싶도록 만든 프로그램이 있었다니.

새롭게 시작한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전설의 임재범과 숨어 있는 보석과 같은 김연우가 새로 등장한다니.
본방을 사수하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다시 보면서 참 많이 웃고, 감동을 받고 눈물도 흘렸던 프로그램이었다.

드디어 내일 경연했던 내용을 다시 방송한다고 하니 엄청나게 기대가 되고, 정말 오랜만에 닥본사 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지난번 방송을 보았던 느낌을 조금씩이나마 남겨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윤도현을 정말 좋아했는데, 사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이소라

첫 번째 무대를 장식했던 건 이소라였다. 지난번 방송 때 어쨌는지 보지는 못 했고, 방송인으로서의 '자질'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오히려 그 부분을 잘 모르니 더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곡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왜 하필 이런 노래를 택했나 싶었다. 노래 자체에 임팩트나 하이라이트가 없어서 들을 때는 좋을지 몰라도 가수들이 모여 경쟁을 하는 자리에 속된 말로 노래방과 같은 자리에는 그다지 적합한 노래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래를 시작하고 나서는 와 라는 감탄사가 절로 쏟아져 나왔다. 끝난 후에는 괜히 이소라가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했고. 어쩌면 노래에 그렇게도 감정을 남아서 애절하게 부를 수 있는지.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이 프로그램 참 대박이구나 싶었다. 가수 이소라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노래랄까.

2. 김연우

김연우가 노래를 참 잘하는 가수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고, 목소리도 좋아한다. 그 어려운 노래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부르는 것도 부럽기도 하고. '여전히 아름다운지'라는 선곡은 어찌 보면 다른 대안이 없어서 했던 선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적당히 알려져 있고, 그런대로 가창력도 보여줄 수 있는 노래니까. 그런데 정말 너무나 여유롭게 부른다.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나니 노래를 한 수 가르쳐 주러 나온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으니까. 근데 방송 분량이 많이 잘린 게 안타깝다. 발라드에만 편향된 목소리라 경연과 같은 자리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아직은 상상이 잘 안 된다.

3. 윤도현(or YB)

YB의 무대를 보면서 느낀 건 자신을 전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밴드를 뒤에 가진 윤도현에게 꽤나 유리한 점이 있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무대를 많이 보여주기도 했고. 나는 나비라는 노래의 선곡으로 조금 편하게 가지 않았나 싶다. 1등은 절대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다른 가수들과는 다른 신나는 무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절대 꼴찌는 하지 않을 수 있을테니, 꽤나 안정적인 선택이랄까. 결과가 3등인 걸 보면 내 예상보다 조금은 잘 나왔다. 그런데 음악이 참 많이도 짤렸더라. 보통 박태희의 코러스는 2절부터 나오는데, 1절부터 코러스를 하고 있고, 영어로 부르는 건 2절을 다 부르고 마지막에 나오는데 말이지. Rock will never die!

4. BMK

BMK는 정말 임재범의 말대로 한국의 아레사 프랭클린인 거 같다. 울림통이 안정되어 있다는 말이 어찌나 재미있게 들리던지. 그녀의 선곡도 어찌 보면 유일할 수 밖에 없는 '꽃피는 봄이 오면'. 쉬지 않고 몰아치는 2절 후반부 보면서 와, 정말 잘한다는 생각은 했는데, 나온 가수 중에 어찌 노래를 못한다고 할 가수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랴.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 역동적으로 몸이 흔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김제동이 보고 나서 한 마디를 했는데 이소라, YB, 박정현을 합쳐 놓은 느낌이라고. 모든 장점을 갖고 있지만, 어찌 보면 자신의 특색이 조금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단점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5. 김범수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축제처럼 즐기고 싶다고 했는데, 조금은 너무 즐긴 게 아닐까 싶다. 나도 그렇고 관객들도 그렇고 '뭐, 역시 그냥 잘 부르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 가지 않았을까 싶다. 기억에는 사라졌고...무대 자체에 임팩트가 없어서 그랬는지 '섹소폰~'으로 대부분의 방송 분량을 떼워 먹지 않았나 싶다. 자신 목소리의 특징을 살리는데 조금은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6. 박정현

한국말이 여전히 좀 서툴긴 하지만, 멘트들도 그렇고, 요정과 같은 모습도 어쩌면 그렇게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노래만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정말 보면 볼수록 보석같은 가수가 아닐까 싶다. 미아라는 노래는 처음 들어 보지만, 정말 가슴속 머리속 깊숙히 박혀 버렸다. 어쩌면 그렇게도 청충을 앞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요란스러워 보였던 제스쳐도 이 날 따라 더 멋져 보이지 않았나 싶다. BMK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면 한 자리에서 손으로만 보이는 제스쳐가 또 인상적이던데. 개인적으로는 이 날 나가수 최고의 무대가 아니었나 싶다.

7. 임재범
나올 때부터 띄워주는 분위기였다. 전설에 대한 예우는 잘 갖추었던 것 같고, 정말 목소리 하나만으로 관객을 앞도한다는 말이 허황된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임재범의 노래를 들으며 느꼈던 건 '난 대충 불러도 이 정도고 너네보다 잘하니까, 뭐 알아서 들어' 이런 느낌이었는데, 처음부터 굉장히 진지하게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의외는 의외였다. 그런데 음정이 안 맞는 부분이 꽤 나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한데, 너무들 띄워주기만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감동을 받았던 건 부인할 수 없긴 하다만. 어찌 보면 임재범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자체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뭐, 듣자마자 괜히 노래방 가서 '너를 위해'를 다시 불러 보고 싶어졌다.

이런 공연..정말 먹거리가 가득찬 상을 바라 보다가 배 불리 먹었을 때의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다양한 국내 내 놓으라하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한 무대라니..거기에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노래를 했을테니. 오늘 이들이 다시 보여줄 무대는 어떨지 너무도 궁금하다. 잘못하면 본방 사수를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꼭 볼 것이다. 듣자하니 윤도현은 마법의 성을 부른다던데....상상이 잘 안 된다. 모두들 화이팅!


p.s. 마지막에 순위 호명할 때 장기호 교수는 밴드 이름이 바뀐지가 언젠데 아직 윤도현밴드라니..그냥 윤도현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갔어야 되지 않나 싶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