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나이 서른과 결혼. 회사원 생활

넌 결혼 안 하냐?
왜 결혼 안 해?
언제 결혼 하려고?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 3종 세트다. 뭐 진심으로 걱정이 되거나 관심이 있어서 하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런 느낌이 없기에 기분이 나쁜 경우가 많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넌 언제 군대가'가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이었는데, 무사히 끝마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다른 질문으로 날 괴롭힌다.

일단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모르겠다. 아직은 안 간다 라고 한다.

그걸 듣고 나면 다들 하는 소리가 니가 이제 몇 살인데로 시작하는 듣기 싫은, 그렇지만 수 없이 들었던 이야기 리스트가 있다. 그중에는 갈려면 빨리 가는 게 좋다에서부터 지금 장가를 가서 몇 살에 애를 낳아야 회사에서 아이의 대학교 학자금을 대 줄 수 있다느니 하는 얘기가 90% 이상이다. 그밖에 다른 건 정말 없다. 그런데 과연 회사의 미래를 최소 대략 25년 후의 미래를 어찌면 그리도 낙관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난 될어 그렇게 물어 보고 싶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회사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인지? 지금까지 지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인지.

뭐, 회사야 어찌 버틴다 해도 그 말은 지금과 같은 생활을 적어도 25년 이상은 더 해야 한다는 건데, 난 내 인생이 이대로 굳어져서 이대로 마무리를 할 거라고는 아직 생각을 못 하겠다. 다들 나에게 지금과 같은 인생이 최고라고 그냥 회사에서 버티면서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확신을 시키려고 노력한다. 도대체 왜 날 여기에 붙잡아 묶어 두려고 하는 건데?

난 적어도 아직까지는 좀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다. 지금처럼 열심히 벌고, 열심히 쓰고 싶다.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난 하자면, 난 많은 걸 억누르고 살아왔다는 걸 아직도 계속 느낀다. 물건을 사는 것이라고는 책 밖에는 없었고, 돈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20 살 시절 간신히 만 원하는 면바지를 입으면서 4만 원하는 지오다노 바지 두 장을 아무렇지 않게 사는 친구를 보며 느꼈던 충격이 아직도 떠오른다. 도서관에서 배가 고프지 않기 위해 최대한 밥을 늦게 먹으려 했던 순간들, 밥을 먹고 물을 많이 마셔서 최대한 배를 채우려 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 아직도 돈 천 원에 집착하는 날 보며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경제적인 면에서 자유로워졌다. 처음에 10만 원을 넘는 청바지를 보며 놀랐던 내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15만 원을 넘는 청바지를 사기도 하고, 출장을 다니다 들르던 면세점 명품 코너의 코트 등을 사 볼까 하기도 한다. 남들이 올려 놓은 후기를 보며 부러워하기만 하던 비싼 공연도 일 년에 수십 개씩 볼 수도 있다. 수백만 원하는 악기도 이제는 눈 딱 감고 지를까 말까 고민하는 수준이고, 해외 여행도 이제는 시간만 맞는다면 아무렇지 않게 시도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걸 다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가능하다는 생각만 할뿐.) 그런데 결혼을 한다는 건 이중에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회사에서 시달리고, 저녁에 들어와서 다른 일을 하는 건 좀더 즐겁게 살기 위해서지 아직 있지도 않은 미래의 처자식을 먹여 살릴 걱정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얼마 즐기지도 못한 (금전적) 자유를, 이제 좀 즐기려고 하니 다들 왜 그만두지 못하느냐고 난리들인 것인가? 내가 즐기면서 사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자기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결혼한 게 아쉬운 건가?

나에게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은 결혼을 해서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지를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행복을 느낀다는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감사하게 듣겠다. 웃기는 건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물으면서 결혼에 대한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결혼해서 애 낳으면 잠 못 자서 고생,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해서 고생이다란 말 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묻는 건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이 서른이 돼서 많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난 아직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말로 잘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하는 것만 있을 뿐. 그러니 아직은 나 자신을 무겁게 해서 현실에 주저 앉고 마는 것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아직은 현실에 충실하면서 일단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나면 돈도 더 모일 것이고 다른 길(혹은 같은 길)이 보이겠지. 지금은 일단 내 일과 내 여가에 충실하면서 그 길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고, 결혼은 그때 가서 다시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냐!!

p.s. 군대 가기전에도 나이 먹어서 군대가면 고생이다, 너보다 어린 애들이 너한테 뭐라고 한다면서 나보다 주변에서 더 난리들이었다. 근데, 뭐 가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만. 덕분에 난 저주받은 우리 00' 학번 동기들이 군대에서 봤다는 2002년 월드컵을 밖에서 볼 수 있었고, 동기들 26 개월하던 것도 24 개월만 하고 나왔었다. 졸업, 취업도 크게 문제 없었고. (복학하고 4학년 첫 수업을 들을 때 좀 어렵긴 했지..-_-;)


덧글

  • 푸리 2010/03/14 17:42 # 답글

    같은 나이에 같은 생각이네요...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지만 그냥 생활을 즐기고 싶은...
    지난 겨울 내내 결혼하고 싶었는데 막상 그 타이밍이 지나고 보니 다시 혼자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트레이시 2010/03/14 21:33 #

    같은 나이라고 하시니 반갑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왜 다들 짜여진대로 가라고, 획일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요? 그냥 남들 사는대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지만, 자꾸 그런 얘기를 들으니 좀 삐딱해 지고 싶어집니다. 전 그냥 일단 좀 미루고 싶은...^^
  • 찌짓떼로 2010/03/15 06:46 # 답글

    ...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십쇼. 진심으로 충고 드립니다.
    님의 고민, 불확실함, 헷갈림, 두려움, 그리고 아쉬움 다 이해합니다만,
    사람들이 자꾸 강요하고 태클걸고 딴지 거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문제는 결혼 해보기 전에는 왜 빨리 결혼해야 하는지 절대로 이해 못한다는 거죠...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사람들은 나중에 다 그 자유로왔던 과거를 후회한다는 말도 있...
  • 찌짓떼로 2010/03/15 06:53 #

    뭐, 지금 님이 다른 사람에게 결혼하라는 말 들어도 절대로 이해 못하실 거고, (오히려 결혼하라는 말 들으실 때 마다 반감만 쌓이실듯),

    그래도 언젠가는 결혼하실 거고,
    (그렇죠?)

    그때 되면 왜 사람들이 결혼해라 결혼해라 했는지 이해하시게 될 것이고,
    (...)

    님도 주변의 서른 살 쯤 된 독신 남성에게 '빨리 결혼 안하냐' 라고 말씀하시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 남자분은 반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 패턴이 정말 맞는지 안맞는지에 대해서는,
    주변의 결혼하신 분 10분께 물어보세요. 장담컨데 10분중 8분 이상이 맞다고 하실 겁니다..



    참고로, 저는 제 주변의 독신남에게
    "빨랑 결혼해서 너도 이 고통을 함꼐 겪어 봐야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동성애자의 결혼도 지지하는 편입니다.
    동성애자들도 이런 고통을 같이 겪어 봐야죠.

    님도 주변의 어린 후배들이 군대가기 싫다고 할때
    그거 언젠가는 가게 되어 있는데 빨랑 가는게 낫다고 한적..

    에, 없으시겠군요!

    음. 제가 아는 사람들은 군대 늦게 간 경우, 다들 힘들었다고 하던데
    (어린 사람에게 반말듣고, 제대하고 나서 적응하기 힘들고, 등등)
    님의 경우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결혼을 하는 건 그 수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만큼 더 수많은 것들을 얻는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비교해 보면 결혼후가 확실히 낫습니다)

    하지만 그런거 가르쳐주기 싫으니까
    그리고 놀려먹고 싶으니까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서 안좋은 소리만 합니다 ㅋㅋㅋ

    군대 가서 '군대가니까 살이 빠지고 규칙적으로 살게 됬어' 라고 말하기 보다는
    '야 죽고 싶어 죽겠다. 완전 지옥임. 넌 이제 군대오면 좆됬음. 근데 넌 군대 안가냐?"
    .. 하는거 하고 똑같음.

    ㅋㅋ

    요약하면, 님 맘대로 하셈. 행운을!
  • 트레이시 2010/03/15 23:16 #

    장문의 답글 감사합니다. 거의 트랙백해서 쓰신 거나 진배 없네요. 결혼은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2~3년 정도 안에.) 회사에서 보는 40대가 다 된 노총각을 보는 것보다 그 나이에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훨씬 나아 보이니까요. 근데 제가 싫어하는 건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나중에 제가 느끼는 건 어찌 될지 확신할 수 없지만, 현재 이야기하는 이유라는 게 정말 보잘 것 없으니까요.

    늦은 나이에 군대 가기 전이랑 어찌도 상황이 이리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별 거 아닌 거 갖고 크게 만드는 데 뭐 있는 사람들도 참 많고. 당시에도 정말 큰일날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 막상 부딪히면 아무 일 없던 게 기억납니다. 군대 문제에 있어서는 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군대에 적당한 이유가 있다면 굳이 일찍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 해야지, 뭐 그냥 나이 찼다고, 남들 간다고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군대내에서 나이 한두 살 어린 친구들에게 반말듣는 거야 기껏해야 1,2년인데요. 전 나중에 제대해서 그 어린 친구들이 절 만나서 머쓱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재밌던데요.

    꼭 제가 결혼 안 하겠다고 떼 쓰고 있는 것 같군요. 그냥 몇 년 뒤가 좋지 않을까 하고 있는 건데 말이죠. 아무튼 뭐, 이런 말하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려면 적어도 결혼 전까지는 정말 즐겁게, 잘, 열심히 살아야겠죠.
  • 찌짓떼로 2010/03/16 06:55 #

    맞는 말씀입니다.
  • 솔직녀 2010/03/15 07:59 # 답글

    정말로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사람과만 하세요.
    결혼 일찍해서 좋은점도 물론 많지만, 결혼 일찍해서 젊은 시절 마음껏 하고 싶은 것 못해본 친구들은 그걸 후회하더라구요.

    나중에 후회해도 자기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길을 가서 후회하는 것이 다른 이들의 말에 따라가서 후회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 트레이시 2010/03/15 22:09 #

    감사합니다. 마지막 문단의 말씀 깊이 공감합니다. 제 인생인데, 옆에서 자꾸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거 지겹더라고요. 후회해도 내가 하는데 어쩌면 오지랖도 다들 넓으신지. ^^ 이제는 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라는 게 좀 두렵지는 하지만, 정말 제가 내린 결정을 후회하는 게 남의 말 듣고 후회 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고 생각합니다.
  • HODU 2010/03/15 14:16 # 답글

    결혼이란거... 아무나 만나 적당히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최고의 상대와 최고의 때가 있는법인데...

    그런말 하는사람들은 그냥 할말이 없어서 그런거같아요
    다른 이야깃거리로 대화할수 있는사람에겐 저런얘기 잘 안하잖아요. 꼭 잘 알지못하는사람들이 마주서면 할말이 없어서 군대나 결혼이나 출산얘기를 꺼낸다는...

    참.. '결혼은 언제해' 다음엔 '아이는 언제낳아?' 구요... 그다음엔 '둘째는?' 이랍니다.
    이런얘기도 친한사람은 처음한두번만 물어보고 안친한사람은 마주칠때마다 물어본다는거...
  • 트레이시 2010/03/15 22:13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아는 선배에게 들은 말인데 결혼은 자기가 하는 게 정년이니, 뭐 남자는 몇 살, 여자는 몇 살이 아니라고요. 나이 좀 들었다고, 주위에서 하라고 한다고 하면 우유부단했던 스스로에게 원망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의 질문은 끝이 없군요. 질문이 없을 그 잠깐을 즐겨야 하는 것인가요? 군대 갔다 와서 잠깐, 취업하고 잠깐. ^^ 자꾸 물어 보는 사람들의 기억력 수준을 좀 의심해 보고도 싶습니다. 회사에서 정말 일주일이 멀다하고 물어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에고, 좀더 건설적인 질문은 없나 모르겠습니다. '니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냐?' 등 말이죠.
  • 팔방미남 2014/06/28 23:34 # 삭제 답글

    동갑내기시네요.
    저도 저랑 비슷한 20대 비슷한 생각과 고민 타인에게 느끼는 나의감정들도 비슷하신거 같네요.ㅎ
    저도 언젠가 결혼을 할꺼고 하고 싶네요.
    분명한건 시간보다는 사람이 우선이고,
    결혼을 해서도 다른 무엇보다 가족이 우선이고 그러기위해 열심히 일할것이고 그러면서도 나의 행복과 꿈을 희생시키지 않는..
    그런삶을 살고 싶네요. 결국 모두가 바라는 희망사항이네요.
    단 꼭 성공할거라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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